펠라그라의 단서를 준 반려동물, 개
어느 날 얼굴과 팔 전체가 붉게 부어오른다면? 놀라서 몸을 훑는데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큰 병이다 싶어 밖을 나왔는데 보이는 사람마다 피부가 울긋불긋하다. 누군가는 침울하고 누군가는 혼잣말을 한다. 우는 소리를 따라가니 유명을 달리한 자 옆에 가족이 애처롭게 있다. 갑자기 뒤바뀌어버린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다. 1907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펠라그라의 공포
미국 남부는 옥수수 주생산지이고 옥수수는 20세기 초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었다. "펠라그라(pellagra)"는 염증으로 피부염과 설사가 나타나고 치매와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다가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1907~1940년 사망자는 10만 명으로 추산됐다.
골드버거 박사의 발견
미국 공중보건의 조지프 골드버거 박사는 농업지역, 요양병원, 보육원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것을 보고 전염병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치인, 자본가, 의사, 교사의 발병 수준이 낮은 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펠라그라의 원인이 "비타민 B3(니아신)" 결핍임을 밝혀냈다. 부유층보다 고기, 우유, 채소를 섭취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서민들은 B3 흡수율이 낮은 옥수수를 주로 섭취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병에 시달렸다.
정치적 외면과 인재(人災)
정치적 회피
당시 정치인들은 '민생을 돌보지 못해 생긴 결과'라는 뭇매를 맞기 싫어 펠라그라 원인 규명을 꺼렸다. 그들은 문제를 인정하기보다 '전염병'이라는 틀에 가두어 사회적 책임을 회피했다. 골드버거 박사의 발견이 있었음에도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은 지연되었고, 이는 수많은 추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경제적 어려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기와 같은 비싼 식료품을 보급하기도 어려웠다. 대공황 시기와 맞물려 식품 보조 프로그램을 시행할 재정적 여력이 부족했고,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였다. 가난한 농민들은 값싼 옥수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갇혔다.
인재(人災)의 비극
질병보다도 무서운 인재였다. 원인이 밝혀진 후에도 10년 이상 펠라그라로 인한 사망이 계속되었으며, 이는 사회적 무관심과 불평등한 식품 접근성 때문이었다. 1938년에 이르러서야 빵에 니아신을 첨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에서 주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 비극이 단순한 질병이 아닌 구조적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미국 의학계가 펠라그라의 원인을 찾기까지 30년 넘게 걸렸으며,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골드버거 박사의 연구는 의학적 발견을 넘어 사회정의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시 사회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이는 과학적 발견만으로는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행동이 함께해야 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개가 준 결정적 단서
1
B3 결핍 실험
당시 B3 결핍 실험으로 개의 혀에 검은 점이 생기는 흑설병(黑舌病)을 발견했다.
2
유사성 발견
연구진은 흑설병과 펠라그라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3
효모의 효과
이때 효모가 치료에 탁월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힌트로 작용했다.
4
해결책 발견
결국, 빵을 만드는 효모를 대량 보급했고, 이런 조치는 펠라그라 치료와 예방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개는 펠라그라 종식의 숨은 공신이자 국민을 외면한 정치로부터 서민 건강을 지켜낸 동반자였다.
반려동물의 의미
한자적 의미
한자로는 짝반(伴), 짝려(侶)자를 쓰며 영어로는 동반자를 뜻하는 "companion animals".
동반자의 의미
삶을 같이 살아가는 존재, 함께 숨 쉬고 걷고 웃을 수 있는 대상을 동반자라고 한다.
사람과 개의 오랜 역사
최초의 동물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개는 사람에게 스스로 다가와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이다.
40,000년 전
최근 늑대에서 분화된 개 유전자 분석 연구에 의하면 사람과 함께한 개의 역사를 4만 년 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4,000년 전
독일에서 발견된 14,000년 전 개 화석은 공존 시기를 가늠할 증거다.
개의 다양한 역할
사냥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첫 번째 협력자로서 개는 사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인간보다 뛰어난 후각과 청각으로 먹잇감을 추적하고, 빠른 속도로 사냥감을 쫓아 인류의 식량 확보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집지킴이
농경사회가 발달하면서 개는 가정과 재산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날카로운 감각으로 외부 침입자를 감지하고 경계하며, 위험을 알리는 경보 시스템이자 든든한 방어선으로 가족의 안전을 책임졌다.
경찰군견
현대 사회에서는 법 집행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마약 탐지, 실종자 수색, 용의자 추적 등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감각으로 범죄 예방과 수사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구조견
지진, 산사태, 눈사태 같은 재난 현장에서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수색하며 생존자를 찾아낸다. 특수 훈련을 통해 극한 환경에서도 활동할 수 있으며,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희생하는 진정한 영웅이다.
도우미견
시각장애인의 안내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 알림, 자폐 아동의 정서 안정까지 다양한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돕는다. 특별한 훈련으로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며 장애인의 독립적인 삶과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든든한 조력자다.
반려견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역할로, 단순한 애완동물을 넘어 가족 구성원으로서 정서적 안정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한다. 스트레스 감소, 우울증 완화, 사회성 향상 등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삶의 질을 높이는 소중한 존재다.
이런 특별한 존재의 역사를 가늠한다면 어쩌면 펠라그라 종식을 위한 개의 도움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수만 년 동안 인류의 생존과 번영,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함께해 온 개는 펠라그라 위기에서도 늘 그래왔듯 또다시 인류를 도왔을 뿐이다. 골드버거 박사의 발견을 이끈 개들의 건강한 모습은 인류의 오랜 동반자가 준 또 하나의 소중한 선물이었다.
펠라그라의 단서를 준 반려동물, 개
어느 날 얼굴과 팔 전체가 붉게 부어오른다면? 놀라서 몸을 훑는데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큰 병이다 싶어 밖을 나왔는데 보이는 사람마다 피부가 울긋불긋하다. 누군가는 침울하고 누군가는 혼잣말을 한다. 우는 소리를 따라가니 유명을 달리한 자 옆에 가족이 애처롭게 있다. 갑자기 뒤바뀌어버린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다. 1907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미국 남부는 옥수수 주생산지이고 옥수수는 20세기 초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었다. "펠라그라(pellagra)"는 염증으로 피부염과 설사가 나타나고 치매와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다가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1907~1940년 사망자는 10만 명으로 추산됐다. 미국 공중보건의 조지프 골드버거 박사는 농업지역, 요양병원, 보육원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것을 보고 전염병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치인, 자본가, 의사, 교사의 발병 수준이 낮은 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펠라그라의 원인이 "비타민 B3(니아신)" 결핍임을 밝혀냈다. 부유층보다 고기, 우유, 채소를 섭취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서민들은 B3 흡수율이 낮은 옥수수를 주로 섭취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원인을 밝히면 해결될 것 같던 펠라그라의 장막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당시 정치인들은 '민생을 돌보지 못해 생긴 결과'라는 뭇매를 맞기 싫어 펠라그라 원인 규명을 꺼렸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기와 같은 비싼 식료품을 보급하기도 어려웠다. 질병보다도 무서운 인재였다.
그러나 골드버거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서민을 살릴 차선책으로 B3가 풍부한 저가형 식품 원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개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당시 B3 결핍 실험으로 개의 혀에 검은 점이 생기는 흑설병(黑舌病)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흑설병과 펠라그라의 유사성에 주목했고, 이때 효모가 치료에 탁월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힌트로 작용했다. 결국, 빵을 만드는 효모를 대량 보급했고, 이런 조치는 펠라그라 치료와 예방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개는 펠라그라 종식의 숨은 공신이자 국민을 외면한 정치로부터 서민 건강을 지켜낸 동반자였다.
반려동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자로는 짝반(伴), 짝려(侶)자를 쓰며 영어로는 동반자를 뜻하는 "companion animals". 삶을 같이 살아가는 존재, 함께 숨 쉬고 걷고 웃을 수 있는 대상을 동반자라고 한다. 사람과 개가 공존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독일에서 발견된 14,000년 전 개 화석은 공존 시기를 가늠할 증거다. 최근 늑대에서 분화된 개 유전자 분석 연구에 의하면 사람과 함께한 개의 역사를 4만 년 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냥팀으로 시작한 동반자는 현재 집지킴이, 경호견, 경찰군견, 구조견, 도우미견, 반려견으로 탈바꿈하며 사람과의 삶을 다양하게 이어가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개는 사람에게 스스로 다가와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이다. 이런 특별한 존재의 역사를 가늠한다면 어쩌면 펠라그라 종식을 위한 개의 도움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늘 그래왔듯 또다시 도왔을 뿐이다.